간밤에는 제법 추적이는 빗소리와
무언가에 부딪고 헤집는 바람 소리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깨어나곤 했는데,
이른 새벽 문을 빼꼼히 열어보니 밖은
온통 희고 뽀얀 설원으로 변해 있다.
땅 위의 모든 흔적들을 흰 물감으로
두텁게 지워버리고 하얀 백지로 남은
풍경들은 마치 태고적 세상 만큼이나
신선하고 감동적이기 까지 한데,
처마밑에 헤집고 들어온 눈을 쓸면서
볼과 눈두덩, 목덜미 등에 눈 알갱이가
뒤섞인 찬 바람이 와 닿으니 정신이 맑다.
이젠 기억도 모호한 어린시절의 동심
저편까지는 애써 돌아보지 않더라도
눈 내린 날의 산골 풍경은 아슴아슴한
노안의 시야에도 너무나 아름다워서,
장독대 위에 볼록한 눈 더미가 다 녹기
전까지는 온갖 세상사 시름을 잊고
동화의 나라를 방문한 여행자가 되어
한껏 고양된 기분으로 삶을 즐기고 싶다.
'초막골의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꽃 위에 눈꽃 (2) | 2025.04.13 |
---|---|
발자국 (1) | 2025.03.07 |
봄볕 내리는 뜨락에서 (0) | 2024.04.12 |
빗물에 씻긴 앞산 풍경 (0) | 2021.04.13 |
2월 어느 고요한 날 (0) | 2021.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