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이야기 30

깨가 서말

가을 전어 대가리엔 깨가 서 말이라고 요즘 TV에서 주구장창 이야기하던데 궁금하면 숯불에 한 번 구워보면 알지. 횟감용 전어야 귀하지만 구이용으로 쓰는 생물 전어는 제법 흔한데 그래도 한 뼘짜리가 열두 마리에 만원이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늦더위를 식혀주는 가을비가 시원하게 추적이며 내리는 날, 온돌방을 덥히고 남은 숯불을 끌어모아 너른 석쇠 위에 가을 전어를 굽는다. 불 위에 전어를 올려놓고 굵은 소금 한 줌 흩뿌리고 뒤집기를 여러 번 거듭 하다가 적당히 노릇노릇 잘 익은 놈을 머리부터 한 입 베어 꼭꼭 씹어 보니, 입안 가득 바삭하게 흩어지는 살점에서 고소함이 배어 나와 그래, 이 맛이지 하는 느낌이 당연한 듯 떠오르는, 가을 전어의 맛을 제대로 즐겨본 시간이었다.

우박이 내린 날

새벽의 차고 신선한 공기가 속눈썹을 어루만지면 머릿속 어떤 영상이 점차 또렷해지고 리듬감 넘치는 새 소리가 청각을 깨우면 오감이 활짝 열리면서 또다시 새로운 하루를 맞게 된다. 삶은 언제나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로의 모험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선 잠깐씩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오늘 오후 맑던 하늘이 닫히고 사방이 컴컴해지며 세찬 바람이 천둥 번개와 함께 몰려오다가 전설과 신화에서나 읽었을 법한 유리구슬 같은 우박이 거칠게 쏟아져 내리는 광경을 산골 스레트 처마 아래서 실제로 경험해 보니, 대자연의 선택 아래 오롯이 맡겨진 깃털같이 가벼운 생명의 현실 속에서 지금까지 잘 이어온 삶의 순간순간들은 얼마나 큰 행운이었고 축복이었는지 살아있는 지금에 감사하고 싶은 하..

봄이 오면

『봄이 오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사월의 푸릇한 교실에서 읊조리던 시구 한 구절은 봄이 되면 어김없이 이명처럼 귓전을 맴돌곤 하는데, 이즈음에 주변은 온통 꽃으로 장식된 연둣빛 물결이다. 가늘게 흩날리는 봄비와 뽀얀 운무에 잠긴 듯한 풍경 속에서 아련히 잊힌 것 같던 먼 시간 속 계절을 반추하고 다시 좋은 추억으로 되새길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삶에서 겪은 봄은 늘 아름다웠고 향기가 짙어 감미로웠고 새로운 출발과 시작이라는 청신하고 풋풋함이 주는 감동 같은 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3월은

무채색의 담담한 산 풍경 속으로 진달래와 올 벚꽃이 몇 점 보인다 싶더니 그새 3월도 훌쩍 기울었다. 새로운 것을 채우기 위해 비워놓은 곳간처럼 이즈음 산골은 고요와 적막 속에 때때로 바람 소리 만 요란했다, 무언가 황량하던 땅 위로 조금씩 새롭게 바뀌는 것 같기도 하지만 금방금방 느껴질 정도는 아니라서 마음은 한가하여 서두를 일도 없고, 무엇보다 이곳의 주인처럼 행세하던 벌레들과 곤충들, 새들과 동물들이 아직은 활발한 움직임이 없는 동안 산골살이에 이만큼 쾌적할 때도 없다. 3월엔 담담한 맘으로 산을 둘러보며 멍한 눈길을 던질 수도 있고,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세월도 잠시 잊은 채 기차 여행길에 잠깐 내려서 서둘러 먹던 따듯한 우동 한 그릇의 여유와도 같은 달콤한 휴식도 가능한 계절이다. 아직 녹지도 ..

산골 생활의 소회

오로지 인간들만을 위해 꾸려놓은 익숙하고 편리한 도시에서 길들어진 탓이겠지만 산골로 돌아온 후 처음 몇 해 동안은 모든 것이 생소했지만 한편으론 신선한 감동에 묻혀 살았다 . 삼라만상이 온통 새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는 듯한 봄빛은 산기슭에서부터 산정을 향해 치닫는데 한창 파릇하게 돋아나는 산나물을 뜯어 먹으면 세상 기운이 다 몸속으로 빨려드는 듯하고, 찬란하게 쏟아지는 오월의 봄볕 아래 그윽한 산꽃 향기 바람에 실려 코끝을 간질일 때면 세월 속에 무디어진 감성의 실타래가 새삼 풀리는 듯 삶이 축복처럼 감미롭게 느껴졌다. 촉촉한 숲속에 계절마다 돋아나는 영지버섯, 목이, 꾀꼬리버섯, 그물버섯, 가지버섯, 노루궁뎅이버섯 등은 바구니 들고 산에 오르는 손이 무색하지 않게 즐거움과 맛의 지평을 넓혀 주었고, 밤..

한여름의 기억 하나

강판 지붕을 우당탕 두드리며 내리는 장맛비에 갇혀 지내다 보니 행동은 굼뜬데 생각만은 시공간을 헤집으며 공상과 상상의 나래 짓을 거듭하다가 추억 속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본다. 태풍이 지나가던 ‘86년 여름 길음시장 앞에서 친구는 그동안 몇 번이나 옮겨 다니던 소소한 업체의 영업직을 접고 대기업 영업사원으로 입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입사 면접 때의 영웅담을 섞어가며 흥겹게 얘기했고, 난 폭우로 인해 활처럼 휘어지는 비닐 우산살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취준생의 불안한 현실과 뚜렷이 가늠되지 않는 미래의 모습을 막연히 더듬으며 낮게 내려앉은 흐린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지. 태풍에 밀려가는 구름은 얼마나 빨리 지나가던지 찬찬히 형태를 살필 사이도 없이 곧장 시야에서 사라지곤 했는데 지금 뒤돌아보니 우리네 인생도 그처..

학교 가던 길

내가 태어나서 자라던 동네는 담다리 일명 담월동이라고 불리던 낙동강 변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영암선 기차역이 있던 임기역 앞의 임기2리(일명 숲터, ‘수터’라고 불렀다)는 교회와 변전소가 있고 상가도 즐비하여 도시 같았지만, 그곳에서 십 여리 비포장 신작로를 터덜거리며 낙동강변 굽이길을 걸어가야 나오는 임기1리(담다리)는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임기국민학교는 중간쯤에서 갈라져 강 옆에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그 길은 강 건너편으로 포장도로가 생기고 사람들이 이농으로 거의 흩어지면서 덩굴과 관목들로 우거져 버렸는데, 어느덧 세월이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과 취향도 변하면서 ‘낙동강 세평 하늘길 산골 물굽이 구간’으로, ‘가슴 설레이며 걷는 여행길’로 다시 태어났다. 내 어린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