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막골의 꽃들

고모님과 산수국 꽃

초막골 촌장 2024. 6. 14. 15:05

안동 사시는 고모님은 1932년생, 우리

나이로 구십 세 살이다. 여전히 기억력이

좋아서 먼 옛날 소싯적 이야기들을 친정

조카들에게 들려주기를 좋아하시는데,

 

시골 부자였으면서도 동생에겐 한없이

매정하고 인색했던 큰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야속함이 뼈에 사무친 까닭에

아직도 말씀 마디마디엔 한숨이 섞인다.

 

이야기의 대강을 꿰어 보면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병술 흉년에 할아버지가 고모와

할머니 사별 후에 재혼한 새어머니,

그리고 이복동생인 어린 두 딸과 함께

이제껏 살던 고향을 떠나 밥벌이를 위해

강원도 태백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때 고모

나이 열다섯 살이었다.

 

그런데 이사를 하고 머지않아 할아버지가

갑자기 병을 앓아서 눕게 되었고, 일을

못하니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기를 밥

먹듯이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고모님 말에

의하면 거의 굶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그리고는 탄식하며 하시는 말씀이

시골 부자로 떵떵거리던 큰아버지가 이사

할 때 쌀 한 가마니만 도와줬어도 그리

쉽게 돌아가시진 않았을 거라고 분해했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헐벗고 굶주리던

고모는 태백서 백 리 떨어진 산골에 살고

있던 종고모가 이웃집 민며느리 감으로

주선을 해서, 집안에선 위세가 대단하던

큰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민며느리로 가게

되었는데,

 

헌 이불을 뜯어서 솜을 타 넣은 홑치마에

오빠가 밤새 삼아준 거친 미투리를 신고

앞서가는 큰아버지 위엄에 군소리 한 번

없이 발은 부르트고 피는 나는데 온종일을

걷고 걸어서 백 리 길을 갔다.

 

종고모네 집으로 데리러 온 열두 살 신랑이

벗어준 버선으로 험한 발을 감추고 시집에

들어가서 종처럼 일하고 식구들 수발들면서

8년을 살았는데, 가을엔 꿀밤을 몇 섬이나

주워서 저장해 두고 양식으로 쓰곤 했다.

 

신랑은 한 번도 같은 방에서 보내지 않고

사랑으로, 밖으로, 군대로 떠돌더니 어느 날

집으로 돌아와선 난 너하고 같이 못 사니

이 집에서 나가라고 했고 며칠 나갔다가

들어 와서 하는 소리가 또 그 소리라 하는

수 없이 쫓기듯이 집을 나섰는데 그때 달랑

돈 오백 원을 쥐어 주었다.

 

돈 없고 갈 데가 없어서 마을 고갯마루를

서성대고 있는데 소문을 듣고 쫓아온 이웃

아낙이 자기가 중신을 해 줄 테니 가자고

보따리를 뺏어서 앞장서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따라 갔다가 고모부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은 아무리 먼 세월 전의 이야기라고

해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짠 해지곤 한다.

 

주변에 큼직한 가짜 꽃잎 몇 개 둘리고

가운데에 암수술이 달린 자잘한 별 모양의

진짜 꽃을 소복이 피워서 전체가 한 송이

꽃처럼 행세하는 산수국 꽃은 복잡다단한

세상사의 오묘함을 닮은 듯 꽤 매혹적이다.

 

마치 온갖 풍상을 겪고도 단아한 미소를

잃지 않는 고모님의 고운 심성처럼.

 

<산수국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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