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에 봄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꽃향기를 꼽으라면 물론 매화도
있고 아카시와 찔레꽃도 있지만 나는
선뜻 라일락꽃 향기라고 얘기하고 싶다.
월동의 긴 수면에서 막 깨어나 온화한
햇볕이 한 사나흘 대기를 데우면 골목길
담장 너머 어디에선가 은은한 꽃향기가
번지는데 대부분이 라일락일 경우가 많다.
이른 봄 라일락꽃 향기를 맡으면 곧장
머릿속 어딘가에 깊숙이 묻어둔 추억의
저장고가 열리고 서둘던 발걸음은 최면에
걸린 듯 스르르 멈춰 서고 만다.
나의 경우는 가수 윤형주씨의「라일락꽃
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한 소절의
맑고 고운 고음이 귓전을 맴돌다가 입에
붙어서 한참을 자동으로 흥얼이게 되는데,
어쩌면 외롭고 쓸쓸했던 빈털터리 젊은
날에도 곱고 아름다운 향기에 끌려서 봄은
그런대로 행복했었네 라고 느꼈을 만큼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좋은 꽃향기이다.
주변에 나무 심을 공간만 생기면 바로
라일락을 심어야지 하는 생각에 한참 전
초막골에도 세 그루를 심었는데 그새 훌쩍
커서 꽃이 피면 향기가 주변에 들어찬다.
게다가 오늘은 검은 산제비나비 한 쌍이
찾아와 꿀을 빠느라 여기저기 꽃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 탓인지 꽃향기의 그윽함이
너무나 짙어서 난 또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라일락꽃과 산제비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