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더니 며칠 새 쑥 자란
고춧대에 풋고추가 주렁주렁 많이 달렸다.
첫물 고추는 맵지 않고 연해서 푸성귀와 같이
끼니때마다 즐겨 먹는데 윤기 나는 것을 바로
따다가 된장에 찍어 먹는 맛이 으뜸이다.
풋고추하면 고교 일학년 때 수업 끝난 후
밴드부 연습까지 하느라 늦은 하굣길에서
길옆 고추밭에 잔뜩 달린 풋고추를 보고
언젠가 외삼촌이 밥 먹는 자리의 한담으로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고 있었는데 길 가던
스님이 공양을 좀 하자고 하더니 풋고추를
맛있게 따먹고 가드라' 며 고추가 요기가
된다는 이야기를 한 기억이 떠올라서
배고픈 차에 풋고추를 하나 따서 씹었다가
바로 뱉어 냈는데도 혀뿌리가 타는 듯한
고통으로 삼십분도 더 걸리는 길을 걸어
집에까지 와서도 울었던 따끔한 추억이 있다.
요즘 소량으로 텃밭에서 키우는 고추는
종묘상에서 파는 모종을 사서 쓰다 보니
열매가 달린 후에야 그 맛을 알 수가 있는데
올해 심은 고추는 껍질이 연하고 아삭하면서
뒤끝에 번지는 은근히 매운맛이 적당하다.
<고추밭>
<풋고추>
<풋고추 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