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가에 얼기설기 엮어놓은
넝쿨 망을 타고 노란 오이꽃이
피면 머지않아 부푼 씨방 밑으로
까슬까슬한 침이 빼곡히 붙은
아기 오이가 얼굴을 내민다.
생명의 탄생은 동식물 가릴 것
없이 항상 경이롭고 신비한데
꽃에서 열매로 변해가는 순환의
여정을 가까이서 보는 느낌이란
늘 그렇듯이 숙연함이 앞선다.
오랜 장맛비에 함초롬히 젖은
아기 오이의 싱싱하고 토실한
자태는 이제 제 할 일을 끝내고
시들어 떨어질 어미꽃의 마지막
소망 같아서 사뭇 감동스럽다.
<아기 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