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계곡의 서늘한 갈바람이
나뭇잎들을 단풍으로 물들여서
울긋불긋 곱게도 치장한 날,
고향과 가깝기 때문인지 뭔가
느낌과 냄새와 풍경이 편안한
울진 소광리 솔숲을 걸었다.
누구보다도 특히 소나무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건 이 고장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 아닌가?
늘 솔 냄새, 관솔 내음, 솔 갈비
연기 속에서 손에 끈적한 송진을
묻히며 자란 어린 시절 속에는
아기 소나무부터 낙락장송의
붉은 노송까지, 새순에 다북이
앉은 송홧가루와 묘한 생김새의
솔방울들, 봄철 진미인 송기와
밤을 밝히던 관솔 그을음 냄새,
솔밭 뜬 내 같은 송이국 향기와
복령 속살의 담백한 가루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함께한
솔숲의 기억들로만 가득하다.
소나무는 물이나 공기처럼 늘
주변을 채우고 있었고 우린 너무
당연한 듯 누려왔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니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야기와
꼭 닮은, 여리고 나약한 인간을
끝없이 보살피고 도와준 어머니
같은 존재였던 것을,
소광리 긴 솔숲길을 오르며
금강송의 곧고 높은 자태에 새삼
감탄하면서 소나무와의 인연을
되새겨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울진 소광리 솔숲길>
<수령 약 오백년된 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