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떠밀려 정신없이 살아온 듯한
산골 생활도 제법 연차가 쌓이고 보니
철새의 지저귐 귀에 익고 꽃과 열매들,
곤충들도 무심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초막골에는 백선과 쑥부쟁이는 물론
금낭화, 큰꽃으아리, 윤판나물, 각시붓꽃,
할미꽃, 쥐오줌풀, 물레나물, 꽃향유,
배초향, 초롱꽃 등등이 자생하고 있지만
울릉도에서 온 섬바디, 산마늘도 있고
부처꽃, 매발톱꽃, 영아자, 비비추, 냉초,
옥잠화와 디기탈리스, 컴프리 등 많은
꽃이 원산지 불문 잘 자라고 있는데
풍토나 기후 탓인지 아쉽게도 뻐꾹채,
궁궁이, 고본, 각시취, 는쟁이냉이 등은
몇 해 못가서 사라져 버렸다.
꽃도 철새처럼 때를 가려서 피어나는데,
칠월이 막 시작된 오늘 동네 길가로
왕원추리가 뜨거운 여름의 상징 같은
주황색 꽃을 화려하게 피웠다.
밖으로 빼낸 암,수술을 중심으로 활짝
펼친 여섯 개의 꽃잎에는 농도를 달리한
곤충들의 유도로가 또렷이 도드라져
종족 보존을 위한 치밀함이 느껴지는데,
진화의 결과물로 마련한 이런 장치들이
손쉬운 뿌리줄기 번식으로 인해 거의 다
사장된 듯해서 이제 편한 맘으로 꽃을
감상하고 또 요리로도 즐기고 있다.
<왕원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