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가에 활짝 꽃피운 싸리나무를 보니
문득 60년대, 내 어린 시절 산골마을의
삼십대 젊은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곧게 자란 싸릿대를 한 움큼 베어 와서
잎은 훑어 버리고 물에 축여 놓았다가
호롱불 아래 능숙한 솜씨로 칼로 쪼개고
돌로 문질러 펴서 갖가지 용도의 크고
작은 다래끼를 만들곤 하시던 아버지,
그 곁에 두 형제가 턱을 괴고 붙어 앉아
초롱한 눈빛으로 기다린 건 고기잡이에
쓸 우리 몫의 작은 종다래끼였었지.
그 시절 싸리나무는 채반이나 소쿠리,
바지게, 다래끼에서부터 사립문과
울타리 등 생활 전반에 쓰임새가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요긴한 재료였고,
또 주변에 흔하기도 했거니와 일상에서
자주 보고 만지고 할 만큼 껍질부터 흰
속살까지 깨끗하고 냄새마저 은근해서
더없이 친숙한 나무 중 하나였는데,
"뽕나무가 뽕하고 방귀를 뀌면 대나무가
댓끼놈하고 혼을 내고, 그때 옆에 있던
싸리나무가 싸워라 싸워라하고 부추기면,
점잖은 참나무가 참아라 하고 말린다" 는
등의 재미있는 말놀이도 즐겨하며 자랐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 생활 도구까지
만들어 써야했던 고단한 시절도 플라스틱
제품이 양산되면서 사라지고 말았지만,
싸릿대 다루는 솜씨가 수준급인 아버지의
내력이 아들에게도 조금은 전해진 건지,
쭉쭉 곧은 싸리를 보면 왠지 손이 근질거린다.
<싸리나무>
<싸리나무 꽃>
<싸릿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