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를 못 미친 이른 시각,
왁자글한 새소리로 산이 가득 채워지면
골을 메운 짙은 어둠이 슬며시 풀려나며
희뿌윰하게 날이 밝아 온다.
한낮엔 무더위로 바깥일이 힘들어져서
시원한 오전에 부지런히 예초기로 풀을 베고
밭 언저리에 자란 무성한 잡초도 뽑는다.
그러다가 왕고들빼기를 만나면 부드러운
윗부분을 잘라 뒀다가 상추쌈에 곁들여 먹고
때론 잘게 썰어서 양념장에 비벼도 먹는데
부드럽게 씹히고 매끈하게 잘 넘어간다.
한 때 식탁을 향기롭게 해주었던 일당귀는
이제 우산 모양의 꽃차례를 활짝 펼쳐서
나물 아닌 꽃 대접을 기대하는 눈치이고,
털전호도 그와 닮은 꽃을 하얗게 피웠다.
왕성한 식욕에도 불구하고 텃밭 쌈채는
아직까지 풍성함이 한철인데, 그 곁에서는
가지, 오이, 방울토마토가 막 꽃을 단다.
작약꽃 지고 잠시 한산해진 꽃밭에는
곧추서서 입을 벌린 용머리가 아득한
먼 바다처럼 꽃 색깔이 푸르디푸르다.
돌무더기 틈새에 무리를 이룬 바위취는
짧고 긴 꽃잎과 암수술을 재치 있게 꾸며서
마치 하늘 요정이 춤추는 듯 나풀거리고,
모처럼 찾아든 고물장수의 앰프소리에
오후의 정적이 여지없이 흩어지는 시간,
예쁘게 꾸민 초롱꽃밥 먹으며
나른한 심신을 새롭게 추스른다.
<왕고들빼기>
<일당귀꽃>
<털전호꽃>
<텃밭>
<오이꽃>
<가지꽃>
<용머리>
<바위취꽃>
<초롱꽃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