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이야기
도토리는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대표 수종인 참나무와
남쪽의 상록 활엽 교목인 가시나무의 열매를 일컫는데
참나무도 굴참, 졸참, 갈참, 신갈, 떡갈, 상수리나무 등
나뭇잎과 껍질 모양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나무마다 달리는 도토리의 생김새도 모두 제가끔이어서
동글갸름하고 각두가 매끈한 것과 알이 둥글고 각두에
털이 붙은 것 등 형태와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어린 시절부터 길들어진 언어 습관 때문이겠지만
도토리 하면 왠지 작고 왜소한 이미지만 떠오르고
꿀밤이라고 해야 정작 먹거리의 실체가 연상되는데
껍질 깐 도토리를 며칠 동안 물에 푹 담가 놓았다가
가마솥에 삶아서 팥과 섞어 놋쇠주걱으로 으깬 꿀밤밥은
어릴 때 한두 번쯤 먹어 본 드문 경험이긴 하지만
떫고 퍽퍽해서 싫어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투리도 고을마다 조금씩 다른 것 처럼 의식주가
집안과 부락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시절 탓이었던지
내 자라던 산골에선 도토리묵을 해 먹는 집이 없었는데
요즘도 가끔 어머니는 "그 흔한 꿀밤으로 어째 묵도 쒀
먹을 줄 몰랐을까?"하며 자조적인 말씀을 하시곤 한다.
결국 도토리묵은 다 커서 관광지나 등산로 입구에서
빨리 나오고 값이 싼 탓에 막걸리 안주로 자주 먹었지만
쑥갓과 오이, 양파 썰어 넣고 양념으로 무친 묵 맛은
대부분 질감이 퍼석하고 뚝뚝해서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십여 년 전에 아내와 같이 화야산 등산로
초입에서 유선형으로 갸름하게 생긴 졸참나무 도토리를
한줌 주워다 직접 껍질째 믹서기에 갈아서 전분을 앉히고
묵을 쑤었는데 방금 쑨 묵은 차지고 보드랍고 탄력이 있어서
조금 떫은 맛이야 시비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 후 명지산 능선길의 신갈나무 도토리와 아버지 산소
가는 길의 상수리나무 도토리, 초막골의 떡갈나무와
굴참나무 도토리 등 다양한 도토리로 해마다 조금씩
묵을 만들어 먹는데 맛의 차이는 잘 모르겠고 다만
가을 한철 즐길 만한 먹거리임엔 분명하다.
<도토리>
<각자 자기 모습을 그린 도토리 부부 한 쌍>